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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어디에? 

박원재 목사는 책상에 앉아서 머리를 세게 움켜쥐었다. 
‘휴, 오늘 동문회는 정말 가기가 싫네. 이렇게 잔소리를 들은 다음에 무슨 기분이 나겠어?’ 
  박 목사는 방금 담임목사로부터 한참동안 잔소리와 설교를 들은 터였다. 
  박원재 목사는 미국 L시에 있는 그레이스 힐 한인교회의 부목사로, 그는 교회행정과 대학부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레이스 힐 한인교회는 지역 한인들 모임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중견교회로 창립된 지는 20여 년, 성도는 200여 명 정도가 모이는 나름대로 탄탄한 교회였다. 
담임목사가 오늘 박원재 목사에게 잔소리와 하소연을 늘어놓은 이유는 교회의 성도 수가 계속해서 줄어가는 상황이 답답해서였다. 지난 연말에는 이런 상황을 타개해 보고자 한국에서 유명한 목사님을 모셔서 부흥성회를 한 차례 가졌지만, 그것도 별 소용이 없었다. 
부흥회 당일에는 사람들이 꽉꽉 들어찼지만, 다 이웃 교회에서 온 성도들이 대부분이어서 집회가 끝난 다음 주에도 지난 성도들 그대로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이번에 담임목사는 이런 상황을 통해 박원재 목사에게 교회의 모든 부분에 대해서 불만을 터뜨렸다. 이런 불만이 박목사는 젊은 목사들이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질책하시는 것처럼 느껴져 조금은 불편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자세를 고쳐 앉아 담임목사가 내린 프로젝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레이스 힐 한인교회 전반에 걸친 불만과 박목사에 대한 질책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조금 각도를 달리하여 보니 목사님의 퇴직과 담임목회 이양에 관한 리더십의 테스트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새로운 프로젝트? 

그레이스 힐 교회는 전형적인 한국교회였다. 비록 미국이라는 땅에 있었지만, 외국인이 와서 예배드리는 비율도 낮았고, 이민이나 유학 온 한인들이 대부분이라서 한국말로 예배를 드리고, 각종 행사나 봉사도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타국 생활이 주는 어려움 때문인지, 성도들의 생활형편이나 마음씀씀이도 넉넉하지 않을 때가 많았고, 젊은이들이 밖으로만 도는 탓에 교회에는 활기가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자체 예배당도 없는 교회보다는 형편이 나은 것이었지만, 10여 년이 지나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교회건물도 사람들로 하여금 힘이 빠지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전에 담임목사가 한참 잔소리를 한 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박목사! 우리 교회가 지금 이대로는 희망이 적다는 것을 잘 알지? 큰 비용을 들여서 초청한 지난겨울 부흥회도 완전 실패였어. 성도들 중에는 은혜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실제 불신자가 와서 등록하거나 교회 재정이 나아진 부분은 하나도 없지 않나? 
  박목사! 이번 가을에는 한국의 큰 교회들이 많이 해보는 ‘이웃초청 큰 잔치’ 같은 것을 한 번 해보자고. 그런데 이번에는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네. 한 번 박목사가 완전히 새로운 교회 행사를 한 번 준비해 보게. 지역 한인교회들이 놀라 자빠지고, 사람들이 구름떼 같이 몰려드는 그런 행사 말이야. 지금이 8월이니, 2월까지는 딱 6개월이 남았구먼. 행사 컨셉에서부터 시작해서 강사나 각종 포스터, 현수막… 행사 진행까지 모두 박목사가 일임해서 진행해 보라구. 꼭 멋진 작품을 만들어야 하네.” 



변교수와의 만남 

4번가 드라이브에 어둠이 잦아들고 있었다. 해가 지평선 뒤로 뉘엿뉘엿 넘어가자 앞서 가는 차들의 미등에 하나씩 불이 들어왔다. 박목사는 레스토랑에 차를 대고 허겁지겁 뛰어 올라갔다. 
박목사는 한국에 있는 신학교에서 학부로 신학을 전공했다. 당시 한참 선배였던 변경하 교사는 매우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학부에서는 신학, 대학원으로 가서는 산업디자인을 공부하더니 다시 경영대학원에서 경영전략과 마케팅, HR을 전공한 후 미국의 한 신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김성봉 목사는 미국으로 건너와 한 복지센터의 대표를 맡고 있었다. 최광섭 목사는 한국에 있는 큰 교회에서 부목사로 있다가 유학을 왔고, 유학을 마친 후 미전도 종족 선교를 주로 하는 선교단체의 대표가 되었다. 
“아이구, 박목사. 어서 오게나!” 
변교수가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하셨다. 변교수는 약간 작은 키에 다부진 몸매로 지금은 40대 후반에 열정적인 활동을 하고 계셨다. 
“교수님, 반갑습니다. 선배님들도 잘 계셨죠?” 
박목사는 자리에 앉기 전에 변교수와 손을 굳게 잡고 악수를 나눴다. 

한식 레스토랑의 식탁위에 소박한 상차림이 마련되었다. 서로 간의 안부를 묻고, 음식을 나누며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음식이 모두 물러가고, 후식을 먹으며 각 개인의 신상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올 무렵, 박 목사가 조용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변교수님, 이번에 제가 아주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박목사, 그게 무슨 말인가?” 
“교수님도 아시다시피, 요새 한인교회들의 상황이 썩 좋질 않습니다. 이번에 당회장 목사님께서 큰 집회를 한 번 기획해서 진행해 보라고 하시는데, 그동안 했던 행사들과는 전혀 다른 컨셉으로 진행해야 해서 마음에 부담이 큽니다. 사실 늘 하던 대로 기획해서 강사 초청하고 포스터랑 현수막 만들어서 붙이면 행사야 치러지겠지만, 솔직히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옆에 있던 김목사와 최목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교회이건 어떤 단체이건 사실 이런 상황에 처하기는 매 한가지였기 때문이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변교수가 한참을 침묵한 끝에 말을 떼었다. 



자네 단체의 비전은 뭔가? 

“박목사, 자네 교회의 비전이 뭔가?” 
“교수님, 갑자기 저희 교회 비전은 왜 물어보시는 건가요?” 
“음…, 내가 자네에게 조언을 해주려면 알아야 할 것이기 때문에 그러네.” 
“흠, 그렇습니까? 사실 교회 요람에 있긴 한데, 제가 미처 외우질 못했네요. 양이 적은 게 아니라 서요.” 
“오호! 그럼, 박목사 자네는 교회의 비전을 정확하게 모른단 말이지? 잠깐, 그럼 김목사나 최목사는? 자네들 단체의 비전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에이, 교수님. 요즘 누가 그런 구닥다리 같은 것을 달달 외우고 다닙니까? 그냥 그런 가부다 하는 거죠.” 
“허, 이 사람들 큰일 날 사람들일세 그려….” 
변교수는 말을 멈추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박원재 목사, 김성봉 목사, 최광섭 목사는 서로를 겸연쩍게 쳐다보았다. 
변교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박 목사를 쳐다보며 물었다. 
“박목사, 혹시 한 2-3년 전부터 자네 교회의 성도들이 아주 조금씩 줄고 있지 않은가?” 
“음…, 글쎄요. 하긴 생각처럼 성도들이 늘고 있지는 않은 게 확실합니다.” 
“그럼, 출석한 지 아주 오래된 성도들이나 새신자들은 남아 있는데, 막 왕성하게 활동하는 성도들이 일을 하다가 답답함을 느껴서 다른 교회로 옮기는 경우가 왕왕 있지 않은가?” 
“앗! 교수님.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지난해랑 올해 초에 한 가정씩 교회에 실망을 느끼고 다른 교회로 간 가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 새로운 행사 기획과 디자인이랑 지금 이 질문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건가요?” 
“사실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다네. 내 하나씩 차근차근 가르쳐 줄까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우와, 교수님께서 직접 디자인 컨설팅을 해주신다면 저야 더할 나위 없이 영광이죠. 그런데 저희 교회가 이런 쪽으로 돈을 써본 일이 없어서 예산 책정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쩌죠?” 
“교수님, 저희 복지센터는요?” 김목사가 재밌다는 듯한 표정으로 끼어들며 물었다. 곧이어 최목사도 싱글거리며 자기네 선교단체 이야기를 꺼냈다. 
“하하, 이 친구들. 그냥 날로 먹으려 드는구먼.” 



통합 디자인 프로젝트 컨설팅 

“좋네, 그럼 내 박목사 교회를 기준으로 하여 나머지 두 사람 단체의 이야기도 천천히 조언을 해주지. 대신 이번 건을 공식적인 프로젝트로 삼았으면 좋겠네. 대충 몇 마디 해줄 것이라면 자네들이 새겨듣지도 않을 테고 실제 변화도 기대할 수 없을 테니... 어디 보자, 마침 지금 연구 중인 논문이 있는데 거기에 이 결과를 포함시켜도 좋다는 약속을 해준다면 내가 그 프로젝트로 연결해서 시간을 내 보겠네. 대신 자네들이 매주 마다 한 번씩 모여서 나와 이 프로젝트에 대한 회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네.” 
“음….” 
다들 시간을 내야 한다는 말에 깊게 고민하는 눈치였다. 박목사야 속으로 얼씨구나 했지만, 두 목사들에게 매주 낼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네들 둘은 ‘브랜드 구축’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 
“브랜드요? 교수님, 그거 자동차나 화장품, 옷 등에 사용하는 말이 아닌가요?” 
“주로 그렇지,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네. 지금 보니, 자네 둘도 앞으로 복지단체와 선교단체를 이끌어 가려면 꼭 내 얘기를 들어야 할 것 같네. 교수로서의 명령이네. 둘 다 이 모임에 오게.” 
“흐미… 네.” 
“다 죽어가는 소리로 대답하지 말고! 분명 자네들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될 거야.” 
“내가 앞으로 박목사 교회에 해주려는 것은 비영리단체의 통합 브랜드 구축일세. 그것은 목회 철학, 목회 행정, 경영, 디자인과 마케팅, 브랜딩과 PR이 모두 하나 되어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개념일세. 내가 평생에 걸쳐 관심을 가져왔던 것인데, 앞으로의 비영리 단체들이 꼭 알아야 할 개념이라네. 모두 차근차근 따라와 보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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