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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벤트 아이덴티티로 접근하라


대규모 행사 디자인_1


박원재 목사는 이른 아침 교회 근처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아침 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곤 했다.

생각해 보면 두달이 금방 지나갔다. 지난 어떤 때보다도 바쁜 시기였던 것 같다. 그동안 교회의 얼굴인 로고를 확정해서 만들었고, 이번 겨울에는 천오백만원을 들여서 간판을 모두 교체하기로 했다. 이런저런 일들이 바뀌어 가는 것을 보면서 교회 내부에는 변화에 대한 기대들이 일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무엇을 위한 행사인가?


멀리서 변교수님의 차가 보였다. 교수님의 차는 영국의 ‘미니’라는 작은 차였다. 사람들이 조금 큰 차로 바꾸라고 해도 디자이너는 이 차가 제격이라며 꿋꿋하게 조그만 미니를 몰고 다니는 모습이 때로는 귀엽게 보일 때도 있었다. 

“박목사, 반가우이. 오래 기다렸는가?”

“아뇨, 교수님, 괜찮습니다. 조금 전에 오기는 했지만 이런 저런 생각을 좀 했습니다. 오늘 뵙고자 했던 것은 이제 몇 달 앞으로 다가온 ‘이웃초청잔치’ 준비 때문입니다. 저희 교회 로고를 잘 만들어 주셨으니, 다음 번 작업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지, 뭐. 원래 모든게 계획 속에 있던 것이니까 말야. 자, 그럼 본격적으로 회의를 해보자구.”

“네. 행사는 1월 말로 잡혀 있구요, 지금 주 강사는 지난 번 한국에서 TV에도 나오시고 해서 지명도가 높으신 ‘장경동’ 목사님을 모실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생각은 대략 그정도 입니다.”

“흠…….”

  변교수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노트에 몇가지를 적으시더니, 박목사에게 슬쩍 노트를 들이미셨다. 노트에는 ‘왜? 왜? 왜?’라고 쓰여있었다.

“교수님, 이게 무슨 뜻인가요? 갑자기 왜, 라고 물으시니…….”

“박목사, 주 강사는 왜 장경동 목사님으로 결정이 되었는가? 이건 담임목사님의 의지인가? 자네의 뜻인가? 자네의 뜻이라면 왜 그분을 모시기로 했나? 오해하지는 말고, 개인적으로 장목사님을 존경하니까 말야. 내 말은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해 달라는 뜻이네.”

“글쎄요. 딱히 구체적인 이유는 없구요. 소위 요즘 뜨는 목사님이시라서, 어렵게 어렵게 시간을 조정해서 모시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변경하 교수의 얼굴이 굳어졌다. 박목사는 속으로 ‘아차. 또 한바탕 혼이 나겠구만….’ 하는 생각을 했다.

“예끼, 이 사람, 나한테 그렇게 혼이 나면서도 아직도 그 버릇 못 고쳤어. 그동안 나한테 왜 혼났던 가 한 번 생각해 보게. 늘 어떤 일이나 사건에 대해서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되는대로 진행하다가 혼이 난 것이 아닌가. 장목사님을 모시는 건 좋아. 그런데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행사의 성격에 장경동 목사님이 제일 적합해서 모시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해야 정상아닌가?” 

“교수님. 말씀을 듣고보니 그러네요. 제가 그동안 강사 목사님을 누굴 모실까만 생각을 했지, 왜 이 강사를 모셔야 하는지는 크게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유명한 분만 모시면 되리라, 생각을 했네요.”

지난 행사들을 돌이켜보니,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몇가지 생각이 있었다. 아주 유명한 목사님을 모시고 행사를 해서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인 적이 있었는데, 행사가 끝난 후의 반응은 오히려 시큰둥했던 적도 있었고, 별로 지명도가 있는 분이 아니라서 조용 조용히 행사를 마쳤는데, 교회 성도들이 큰 은혜를 받았다면서 두고두고 이야기를 하며 은혜를 나눈 적도 있었다.




명확한 컨셉으로 접근하라


“그렇다면, 교수님. 이런 행사를 기획하려면 어떤 출발이 좋을까요?”

“대부분의 경우에는 우선 행사의 컨셉을 먼저 잡네. 기획의도라고 하기도 하지. 이번 행사를 통해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그레이스 힐 교회 성도들의 영적인 성장인가 아니면 주변 불신자들에게 전도를 하고 싶은가? 기존의 전통적인 부흥회는 그 경계가 미약해서 불신자들이 오기보다는 이웃 교회 성도들이 와서 보고 가는 폐해가 많았지. 만약에 불신자들을 초청하고 싶다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구. 불신자들을 어떤 그룹으로 묶고 싶은가? 먼 거리에서 와도 상관이 없는가? 아니면 가능한 지역 주민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는가? 마케팅에서는 이것을 시장 세분화라고 하네. 교회 행사를 하는데, 시장 세분화라는 용어를 쓴다는 것이 거부감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생각을 해보자구. 하나의 메시지를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것은 쉽지 않네. 예수님과 제자들도 필요에 따라 커뮤니케이션하는 대상의 수준에 메시지를 조절하셨다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교회가 어떤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지. 특히,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는 행사-이번에는 이웃 초청-라면 목적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당면한 필요를 충실하게 연구해야 할 의무가 있네.”  

“네. 예전에 [새들백교회 이야기]라는 책에서 읽어본 기억이 납니다.”

“그렇지. 잘 아는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도 같은 방법으로 접근할 때가 많지. 교회성장학자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검토해 볼 가치가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네.”

“그렇다면 교수님, 명확한 기획의도를 가지는 것과 전도 대상자들을 연구하는 것과는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그 부분이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아주 큰 관련이 있지. 생각해보게 ‘누구’에게 ‘무엇’을 전할 것인가? 이것이 교회의 가장 큰 고민거리 아닌가? ‘무엇’의 가장 근본은 복음이네만, 어떤 때에는 그것이 치유, 희망, 사랑, 용서, 이해 등의 구체적인 주제로 들어가기도 한다네. 그때에 다시 ‘누구’라는 문제가 드러나게 되네. 생각해 보게. 아직 어린 유치원 아이들에게 내적 치유라는 주제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조금 우스운 일 아닌가. 예를 들어 가정이 부서지거나 상처가 많은 이민 가정이라면 ‘내적 치유’라는 주제가 충분히 적당할 것이네. 다시 물어 봄세. 이번 ‘이웃 초청 잔치’의 대상과 주제는 무엇인가?”

“백 퍼센트 확실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처음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은 이민이나 유학으로 온 가정 중에 젊은 층이 내부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가정들에게 회복의 메시지를 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거봐. 어떤 행사든 막연하게는 그런 백그라운드가 있는 법이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명시화해서 행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네. 왜 회사나 개인도 비전 선언문이 있는 경우에 확 달라지지 않는가? 그처럼, 행사도 일종의 선언문이 필요한 법이네. 그럼 이번 행사는 1차 대상 그룹을 ‘이민이나 유학을 온 젊은 가정 중 자녀가 없으며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 그들 중에서도 그레이스 힐 교회 근처에 거주하는 가정’으로 생각하면 될까? 물론 이 외에 청년과 중년 가정들도 포함이 되네.”

“네, 교수님 너무 협소한 감은 있지만, 그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비주얼을 언어로 이해하라


“이제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구.”

“저는 조금 흔할 수는 있지만, ‘회복’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부서진 가정이 회복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

주제가 너무 흔해서 마음에 안드신 걸까? 변 교수가 다시 침묵에 잠겼다.

“교수님, 너무 뻔한 주제일까요?”

변 교수가 손사래를 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닐세, 아냐. 그것 때문이 아니고, 회복을 어떤 비주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에 잠겼네. 자네 꽤 오래전에 인기를 끌었던 영화 중에 ‘식스센스’를 아나?

“그럼요, 알다마다요. 그거 재미있게 봤던 영화입니다. 결국은 흔한 귀신 이야기 아니였습니까? 나는 귀신이 보여요....”

“하하하. 맞네 맞아. 흔한 귀신 이야기인데,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그것이 뻔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한번도 못하지 않았나?”

“네. 교수님. 다 보고 나서 ‘에이, 이런 뻔한….’하는 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꽤 신선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렇지, 대부분의 주제들은 아주 신선한 것이 있을 수 없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다들 비슷비슷하기 때문이지. 그렇지만, 어떻게 접근하는가는 무수히 많은 방법이 있을 수 있네. 내가 지난 번에는 전도지를 스토리텔링으로 접근하라고 조언해 주지 않았는가? 그처럼, 행사의 주제가 나왔다면 그것을 어떤 비주얼로 표현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네.”

“그 이야기는 이미지에도 컨셉이 필요하다는 뜻인가요? 예를 들어 생명이라면 작은 잎의 사진을 사용한다던가, 성령의 은혜라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 줄기 같은 것들 말씀이시죠?”

“자네 역시 관심이 있어서 그런지, 잘 이해를 하는군. 주제에 맞는 명확한 컨셉의 이미지, 서체 등을 사용한다면 행사의 느낌을 한 층 잘 전달해 줄 수 있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화 포스터를 생각해 보게나. 영화가 코미디 인지, 슬픈 이야기인지 한눈에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포스터를 보면 미묘한 느낌이 밝은 영화는 아니겠다는 것을 한눈에 느끼게 해주지. 이처럼 행사의 비주얼 요소(포스터, 플래카드, 브로셔, 웹사이트)들도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이기 때문에 그 행사의 느낌이 묻어나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네. 내가 교회의 큰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어떤 행사를 진행할 때, 이런 비주얼 요소들의 힘을 이해하지 못해서 단순히 구색 갖추기와 정보 전달에만 머무른다는 점이네. 모든 시각적인 것들은 단순한 정보 전달 이외에 어떤 느낌이나 뉘앙스를 알리는 힘을 갖고 있네. 어떤 때에는 정보 자체보다 그 느낌은 전달하는 힘이 더 클 때도 있지. 그걸 이해해야 각종 행사를 진행할 때 맛깔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것이네. 이번 행사에 대한 구체적인 디자인 사항들은 다음 주에 계속 이야기 하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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